용의자 X의 헌신
인상 깊었던 문장들
숭고한 것에는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명성을 얻으려 하는 것은 그 존엄성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모녀를 돕는 짓은 이시가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그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다. 이건 그녀들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녀는 영문을 모를 것이다. 그래도 좋다.
사람은 때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만으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재밌게 읽었다. 각 캐릭터의 개성과 그런 개성이 반영된 사건에 대한 입장, 시선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인스턴트 글들이면 한계가 있을, 짧고 밋밋하게 끝날 내용들을 차분히 전개해가는 것이, 그 인내가 신기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는 느낌도 들었고 전체적 구성에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돋보기를 댄 것처럼. 이 때 보여주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이 비어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평면적이고 뻔하다 생각되지도 않았다. 작가 인터뷰 중에 글을 무작정 써내려 가다 보면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다며 자신을 천재로 스테이징-천재가 맞기는 하다-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글쎄 조사도 많이 필요해 보이고 각 캐릭터가 실존하는 것처럼 이렇게 각각의 생각과 주관을 가지고 행동하면서 이야기가 퍼즐처럼 전개되려면 무작정 쓰는 덴 한계가 있을 듯하다. 이건 당연한 거지.
줄거리는 이렇다 :
맹점을 찌른다. 기하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이듯.
호스티스 출신 이혼모 야스코는 사업 실패 후 찾아와서 돈을 뜯어가는 전남편 도가시를 홧김에 딸과 함께 집에서 살해했다. 옆집에 사는 수학교사 이시가미는 매우 매우 똑똑하고 논리적인 인재인데, 이시가미가 사체수습(신원을 알수없도록 조작)을 돕고 알리바이를 만든다. 철저하게. 경찰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답하고 뭘 보여줘야 하는지도. 경찰들은 이시가미의 트릭에 걸려들어 헛수고를 이어가는데 이시가미의 대학교 시절 똑같이 너드친구 유가와가 하필 사건담당형사에게 추리 조언을 주는 물리학 교수여서 사건의 내막을 알아버린다. 결과적으로 이걸 알게된 이시가미는 자신을 스토커로 보이게 증거를 미리만들어두면서까지 자수를 해버리고, 유가와가 슬퍼하며 사건의 내막을 야스코에게 말해버리는데 이 사건의 내막이 충격적이다. 이시가미는 야스코와 그 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경찰 조사 때도 경찰이 질문하는 당일의 행적들, 알리바이 등등을 사실 그대로 밝히도록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자기가 자수하도록 상황을 만들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자신이 노숙자를 살해하고 신원을 밝힐 수 있는 내용들을 지우고 도가시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도가시가 사망한 일자를 실제 사건 다음날인 것처럼 조작하고 해당 일엔 모녀가 알리바이를 만든다. 지키기 위해 직접 살인까지 하며 뒤집어쓰다니 눈물나는 사랑 이야기다. 엔딩쯤엔 딸은 자살시도를 했다가 실려가고(죽었으니 안됐지만 아빠는 악인이었다…) 엄마는 자수하러 온다.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항상 사필귀정인 듯.
술술 읽히기는 했지만 또 읽을만한 재미와 감명은 없었다.